도서관에서 서가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눈에 들어와 집어든 책이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 제목이 떠올라 집어 들었던 책인데, 그 책은 아니고 다른 책.
책 내용에서는 교육을 자발적으로 거부하고 일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 혹은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에는 대담 형식의 글을 정리해 추가한 책이다. 자본주의 주체로 사회를 접한 어린이들은 학교 생활 자체도 경제생활로 받아들이고, 교육 자체도 선택이 가능한 문제로 받아들여 자발적으로 교육을 받지 않고자 선택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경제 활동도 마찬가지로 선택 가능한 문제로 여긴다고.
이렇게 탄생한 니트족(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Training)은 현재는 부모 세대의 부양을 통해 그런대로 살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어 부모세대가 없어지면 사회적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일본에서 2007년도에 출판된 책이지만, 한국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인지되기 시작해 2013년에 번역 출판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은 부분들을 이번에도 갈무리해 같이 공유한다.
자기가 모르는 말, 너무도 분명히 자신에게 향하는 말인데도, 그런 말이 언론에 빈번하게 나와도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모른다는 것보다 이처럼 '모르는 것이 있어도 개의치 않는 것'이 위기의 징후로 여겨진다.
세상에는 전쟁과 재해로 배울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 아이들이 무수히 많다. 다른 어떤 것보다 교육받을 기회를 절실히 원하는 수억 명의 또래들이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이들만이 "왜 공부를 해야 하나요? 이 공부는 어디에 필요하죠?" 같은 질문을 입에 올릴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그런 질문을 한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예외적인 사태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나요?"라고 물은 중학생은 '자신이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일 가능성'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왜 교육을 받아야 하나요?"라고 묻는 초등학생은 '자신이 배움의 기회를 구조적으로 박탈당한 사람이 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자기가 누리고 있는 특권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만이 의외의 질문을 할 수 있다.
사회적 능력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어린아이가 여기저기서 쥐어주는 용돈을 가지고 소비주체로 시장에 등장할 때 처음 느끼는 소감은 '법을 뛰어넘는 전능함'일 것이다. 어린아이라도 돈만 있으면 어른과 대등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전능성은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이질적인 것이다.
교육의 역설은 당사자가 교육이 제공하는 이익을 교육이 어느 정도 진행될 때까지, 경우에 따라서는 교육과정이 끝날 때까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런데 소비주체로 학교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애당초 그런 역설이 교육을 성립시키는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옛날 아이들, 다시 말해 노동주제로 출발한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하는 공부와 집에서 하는 노동은 (둘 다 영어로는 work인데) 동일한 것이었다. 일을 열심히 하면 가족과 이웃 사람들에게 유용한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는다'는 직접적인 보상이 주어졌다. 그러므로 "일을 하면 뭐가 좋아요?"라는 질문 따위가 아이들한테서 나올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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